환생
누군가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누구는 환생을 믿는다고 했다. 히메지마 교메이는 후자에 가까웠다. 부처를 믿는 자로서 그런지 몰라도, 그렇다면 제 연인은 어떨까, 어디에 있던지 빛나는 그녀는 윤회와 환생을 믿을까.
"둘 중에 보면.. 글쎄다, 한 번도 그리 생각을 한 적이 없군."
"그럼 이 참에 생각을 해 본다고 하면 어떤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도 피할 것 같군. 생각을 조금 오래 해야 할 것 같다."
그녀는 제가 좋아하는 다과집의 화과자를 먹으며 그리 대답을 했다. 그 대답이 그 질문에 대해서는 마지막으로 히메지마가 들었던 대답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최종적으로 치렀던 싸움에서 둘 다 사망을 했으며 본래, 되살아나는 것이 불가했을 터, 하지만, 히메지마는 온전한 저의 기억을 가지고 되살아났다. 아기 때부터 가지고 있던 그 기억은 커서도, 그리고 그가 학원의 교사가 되어서도 뚜렷이 남아있었다. 그 시절 10대의 일이며, 20대의 일 전부가 그의 머릿속에 담겨 있었다. 단 한 번도, 그 시절의 저도 살아가며 기억이 더해지면 더해졌지, 잊지는 않았다.
되살아난 그가 어린아이일 때, 이번 생의 부모는 건너편 길에 새로이 이사 온 이에게 인사를 하고 오라며 그의 손에 이웃에게 줄 선물을 쥐어주었다. 작은 토리이가 있는 이웃집으로 간 그가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안에서는 목소리와 함께 현관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그의 귀에 담겼다. 그리고 문을 연 이는.
"누구세요?"
여성이었다. 비슷한 기운을 히메지마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어디가 다른 기운이라서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안에서 나온 여성은 제게 시선을 맞추는 것 같았고, 히메지마는 퍼뜩하고 정신을 차리며 자신의 부모님이 제게 넘겨준 선물을 그 여성 앞으로 넘겼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히메지마 교메이라고 합니다. 이사를 왔다고 해서 이리 들리게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인사를 돌리려고 했는데 찾아와 주어서 고맙구나. 안에 잠시 앉아있겠니? 고마우니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구나."
무슨 생각으로 그러하겠다고 대답을 했는지 아직도 저는 잘 모르겠다. 그는 그 집을 들어갔으며 식탁의 의자에 앉았다. 집 안의 풍경은 따뜻했으며, 조용했고, 물을 끓이는 소리와 새가 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가 싶었더니, 어딘가에서 걸어오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드러낸 이는 저와 동년배로 느껴지는 어린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히메지마는 그녀가 누군지를 알고 있었다. 방금 부엌으로 온 사람에게서 나오는 기운은 영원한 그의 등불이자 어디서도 빛났던, 제가 연모하다 못해 오랫동안 앓았던 그 사람이었다. 짧은 시간이 그들 사이에서 흘렀다. 본래 감이 날카로운 그녀라면,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그녀라면 어떠한 형태라도 그를 반겼을 터, 환생한 그녀는 그를 반기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지는 않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히메지마는 고여서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닦으며, 제 앞의 아이가 어머니에게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예요?"
"옆집의 히메지마 씨의 자녀, 히메지마 교메이라고 하더구나. 그래, 히메지마는 나이가 어떻게 되지?"
"저는 6살입니다."
"내 딸도 6살이란다.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겠네."
"내 이름은 키사라기 루리야."
그대도 이름이 같다. 내가 잊지 못할 이름이다.라고 생각하며 히메지마는 친구가 되자는 뜻으로 제 왼손을 내밀었다. 어린 키사라기는 제 오른손을 내밀었다. 저와 비슷하면서도, 잊지 못할 감촉이 느껴졌다. 잘 부탁한다고, 둘은 그리 말했다.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에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 까지, 히메지마와 키사라기는 자라나면서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제 친우 집의 처마에 걸린 풍경을 보며 소리를 듣고 있던 히메지마는 입을 열었다.
"루리, 그걸 기억하는가?"
"무얼?"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의 일 말이다. 여름방학 숙제로 그림일기를 같이 그리던 그때."
"네가 내게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구나.>라고 말했던 그때 말이야?"
그녀의 앞에서 마주 앉아 노트에 코를 박고 숙제를 하던 히메지마는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그때에도 이리 여름이었고, 더웠으며, 마당의 나무 대야에 시원하게 먹으려고 했던 수박과 같이 넣어둔 얼음도, 꺼내 두고 잊었던 아이스크림도 녹아내리던 때이다.
"그 순간의 네 대답은 나도 조금 놀랐었지. 루리, 네 대답은 그 시절 나에겐 시원함 그 자체였다."
"내 대답은 지금도 같은데 말이지, 너와 같이 했던 것이라면 어떠한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야. 자, 빨리 숙제를 하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깐."
그 또한, 그가 가장 기억에 담아두었던 말이었다.
"교쨩"
"말해다오, 루리."
"나 유학 다녀오려고."
같이 교사를 꿈꾸는 자로서, 아직도 연모를 하는 자로서, 히메지마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긴 했다. 하지만 자신이 그녀를 막을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하자, 라는 생각은 예전에도 했었기에. 그리고 전생에서는 그리하게 했다. 그렇다면 지금에서도..
"다녀와라, 루리."
"너는 학원의 선생님이 될 것이지? 어떤지 종종 알려주기를 바라고 있어. 그리고 돌아오면 선배로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알려줘."
그 말을 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그녀를 막지는 않았다, 오히려 배웅을 해 주었다. 그녀는 일 자로 흉이 나 있는 제 자신의 이마와, 눈물로 촉촉이 젖어있는 제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게이트 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2년, 동일한 공항의 입국 게이트에서 히메지마는 그녀를 기다렸다. 매 달 한 번씩, 제가 연모하는 이는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 파일을 메일로 보내주었다. 학원의 교사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 그를 위해 파일을 내려받아 핸드폰에 담아주었고, 그는 쉬는 시간에 이어폰을 끼우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를 들었으면, 기운도 느끼고 싶은 법, 그녀를 매일 생각하며 히메지마는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녀를 닮은 정갈한 꽃다발을 들고 사람들이 나오는 게이트를 바라보던 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의 기운이 느껴지질 않았던 것이다. 분명히 이 시간이 맞지 않았던가, 라고 생각하던 그때, 제가 오랜 시간 느껴왔던, 느끼고 싶어 했던 그 기운이 나왔다.
"어서 와라, 루리."
"보고 싶었던 거야? 나를."
히메지마는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꽃다발을 건네주고 그녀의 짐을 자신이 끌었다. 돌돌돌 하고 바퀴의 음이 공항에 울렸다가 금방 사람들의 목소리, 기계들의 음색에 묻혔다. 히메지마 교메이는 키사라기 루리와 같이 걷는 그 순간, 제 자신의 마음이 그 어느 때 보다 편해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며칠 후,
"오늘부터 고등부 한문 담당, 부활동으로 다도와 서예를 맡게 된 키사라기 루리라고 합니다."
깜짝 놀랐다. 새로운 교사가 부임을 한다고 하지만 설마 제가 좋아하는 사람 일 줄 이야. 그것도 돌아온 지 며칠 만에 말이다. 그렇다면 유학은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간 것인가. 제가 구태여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으니깐. 교사들에게 소개가 끝나고 둘이서 마주 보았을 때, 히메지마는 눈물을 흘렸다. 그 옛날과 같이, 그녀를 처음 볼 때와 같이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교쨩"
그녀는 자신의 손수건으로 히메지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너는 귀살을 하던 과거에도 그랬었다. 과거에도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아, 과거의 너나 현재의 너나 여전히 그대는 내가 연모하는 사람이다. 키사라기의 의도와는 다르게 히메지마는 더욱이 눈물을 흘렸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키사라기의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아도 제 앞에 있는 사람은 잠시만 이리 있자고 단단히 제 자신을 끌어안기만 했다. 키사라기는 영문도 모르고 그의 품 안에서 눈을 감고 그를 토닥여주었다.
학원제가 시작되었다. 교내는 그 한 해를 마무리 하자는 뜻에서 치르는 것이었고, 학급의 아이들이 그동안의 솜씨를 뽐내는 축제가 될 것이다. 히메지마는 학원제가 시작될 때 제를 지내기 위해 신관을 불러 예를 치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 자리를 빛내는 것은 키사라기였다. 친가 측이 신관인 그녀는 예로부터 춤을 춰 왔고, 매번 붉은 하카마와 흰 저고리를 입고, 천 가면을 착용한 뒤 모두의 앞에서 춤을 췄다. 히메지마는 그녀가 출 때마다 흔들리는 방울의 소리와 북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그 주위는 모든 소리를 듣고, 알고 있었으며, 그것은 유학을 가기 전 그녀가 제게 들려주고 느껴주게 한 적이 있었다.
"매번 추는 것, 힘들지 않은가?"
"내 일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고헤이를 든 키사라기는 제게 말하는 히메지마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유학을 가기 전에 내게 그 음악을 들려준 적이 있었지. 모든 것이 뚜렷하게 기억이 나.
"루리, 너는 춤을 출 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추지?"
"춤을 출 때, 무슨 생각을 하냐고? 이번 학원제의 안전을 기하는 것이 대부분이야."
히메지마는 그 대답을 듣고 가만히 숨을 고르었다. 대부분이라면 약간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구태여 그는 그것을 물어보질 않았다. 그녀의 생각이니깐. 천천히 계단을 올라 무대에서 제 실력을 뽐내는 그녀의 기운이 느껴졌다. 신이 있다면 어찌 그녀의 춤 동선에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처가 어찌 그녀의 동선을 보고 내려와 두 다리로 서지 않을 수 있을까.
폐부 가득히 차는 공기는 부족하였다. 속도가 빠르고 정확함을 요구함으로써 폐의 공기는 희박해졌는데 그 순간 가면의 사이로 네가 보이더라, 의자에 앉아 나를 보고 있는 네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교메이, 대부분이 생각이 학원제의 안전을 기하는 것이라면 나머지는 너를 생각하며 춘다.
"매리 크리스마스. 교메이."
"매리 크리스마스. 루리."
너와는 전화 통화로 그리 끝을 냈다. 눈이 오지도 않았던, 하지만 눈이 쌓여있던 크리스마스를 우리는 그리 보냈다, 아니, 그리 보내려고 했는데, 전화를 끊자마자 찾아온 머리가 찢어질 듯한 두통과 함께, 그 크리스마스는 끝나질 않았다.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키사라기는 한순간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일어나 협탁을 붙잡았다. 한 순간 시야가 희뿌옇게 되었다가 깜박이며 정신을 정리하였고, 그대로 다리를 피며 일어난 그녀는 전부 담은, 은은히 빛나는 눈과 함께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만나자, 교메이."
그 한 마디에 히메지마는 나와서 그녀를 마주했다. 땀에 젖어 볼에 붙은 머리카락은 제치고서도 그녀의 눈은 빛나며 그를 마주했고, 하얀 입김은 쉴 틈도 없이 하늘로 올라가 사라져버렸다.
"그대는 어떻게 이 기억을 가지고 27년을 살아온 것인가."
그녀가 뱉은 그 한 말에 히메지마는 추운 날 눈물을 계속해서 흘렸고, 말없이 키사라기는 그를 안아주었지만 그는 들썩임을 멈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 꿇어앉아 그저 눈물만 계속 흘렸다. 그런데도 키사라기는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옛날 처럼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토닥였다.
"약속했지 않은가."
"무엇을?"
혼인을 하지 않고 죽었으니 만나면 청혼 할 것이다. 라는 약속을 직전에 했지 않은가. 라며 키사라기는 가만히 히메지마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손에서 체온과 심박수가 전해지는지 다시금 고개를 들어 붉어진 히메지마의 얼굴을 보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대, 나와 결혼해 주어."